[연세(94호)] 자립음악생산조합 인터뷰

*  연세대학교 교지인 <<연세>> 편집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연세>>지 94호에 실린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들과의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지난 늦가을에 한 인터뷰입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연세>> 편집위원회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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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다섯명의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ㅡ권용만(밤섬해적단, 삼풍 드럼), 노힐, 단편선(회기동 단편선), 세실, 정세현(404 보컬, 기타)ㅡ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밤섬해적단은 해체하였음.

갈 곳 잃은 음악들의 공간

신촌에서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신이문역. 서울의 중심과는 한참 떨어진 이곳에 그들만의 음악 신(scene)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날씨가 유독 험해서인지는 몰라도 일요일 저녁인데도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분식집의 떡볶이는 말라붙어있었다. 그제야 ’석관동에 젊은 사람이 없고 부대시설이 없다‘던 그들의 고충이 실감이 났다. 한참 길을 헤매고 나서야 도착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여기가 맞나 망설이며 문을 열자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온다. 이곳 학생회관 지하에 ’클럽 대공분실’이 있다.

‘탑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도 있을 거고, 슈퍼스타K 심사위원이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도 있을 거고, 저희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도 있을 거고 다 다르잖아요. 여러 가지 음악 장르가 있을 텐데 사실 홍대 인디라는 것도 지금은 주류적인 장르가 정해져있고, 어떤 신이냐 어떤 클럽이냐에 따라 주어진 옵션이 있어요. 주류적인 장르에 속하지 못하거나 주어진 옵션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인데도 여기 와서는 가능하다는 것. 저도 그렇고, 단편선도 그렇고 처음에 시작할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정세현)

안으로 들어서자 노이즈 속에서 누군가 이탈리아어를 읊조리고 있다. 이어서 나온 밴드는 고개를 숙이고 검고 묵직한 사운드를 낼 뿐이다. 어떤 밴드는 에너지 넘치는 쨍쨍한 록을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맨발을 하고 클래식 기타를 거칠게 치기도 한다. 주성치가 나오는 단체 율동 영상을 배경으로 귀여운 음악이 인상적인 밴드도 있다. 11월 4일과 11일 양일에 걸친에는 총 26개의 밴드가 출연했다. 6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공연의 입장료는 만원, 조합원들에겐 공짜였다. ‘사람들이 매일매일 아웃백을 갈 수도 없고 매일매일 김밥천국을 갈 수도 없잖아요. 우린 공연계의 김밥천국.‘(권용만)이라는 말과 같이 메뉴는 많고 값은 저렴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이 내한하는 큰 규모의 록페스티벌처럼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수면 아래의 다양한 음악들을 관객들과 공명하게 하는 하나의 장(場)이었다.

자립음악생산조합

세상엔 소수의 음악이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수만 듣는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소수만 듣는 음악이 아니라 만들었는데 소수가 듣게 되는 것’(노힐), ‘내가 알고 보니 소수였어요.’(권용만)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기본적으로 찐따모임‘(단편선)이라며 얼마쯤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어떤 음악이 ‘잘 팔리는지’가 그 음악의 가치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는 ‘잘 팔리지 않는 음악들’을 ’음악 시장‘에서 배제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잘 팔리지 않는 음악들’이 선택한 하나의 생존 방법이 ‘자립’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계모임’을 하고 있는 거라 보면 됩니다. 물론 돌아가며 곗돈을 타진 않지만요.‘ (단편선)

자립음악생산조합(이하 조합)의 포맷은 간단하다. 조합원들은 매달 5000원을 내고 조합은 그 돈을 모아 조합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음악과 관련된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누구나 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며 조합의 구성원은 누구나 조합의 운영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출자한 돈의 규모와 상관없이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1인 1표의 권리를 부여받으며 조합의 운영위원위는 매년 2회 열리는 총회를 통해 선출된다. 처음에는 조합원을 어디까지 받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은 ‘어디까지가 음악가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공연을 다섯 번 이상 해야 음악가인지 음반을 내야 음악가인지, 음악가에 대한 어떤 기준을 세우는 것이 너무 자의적이고 모호했다. 또, 음악계를 하나의 생태계로 가정했을 때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으며, 평론가와 공연 스태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계에 관여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고 인식했기에 음악 창작 여부와 상관없이 조합의 취지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받기로 결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자립’이라는 기치 아래 다시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해선 신에 관심이 있는, 그리고 신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주체들이 조건 없이 가입할 수 있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한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편선)

조합은 조합에 속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물질적인 혜택을 말하자면,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들은 앨범을 낼 때 50만원 한도의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음악의 감상자는 음악을 창작하는 조합원들의 음악을 더 싸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공연 입장료 할인 혹은 공연 무료입장 같은 혜택을 받는다. 조합원 모두는 조합에서 매년 여름과 겨울 운영하는 음악 전반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 수강료에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들을 합니다

‘인건비와 페이를 다른 곳에서 잘 안 줬던 것이 조합이 만들어지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어요. (저희는 인건비랑 페이를 제대로 주기 때문에) 인건비랑 페이 많이 나간다고 총무가 찡찡 대요. 이런 총무는 때려잡아야 됩니다. (농담)’ (권용만)

홍대 인디음악 클럽들에는 공연에 대한 대가 지불의 기준이 없다. 밴드들이 공연을 해도 페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공연에서 발생한 수익은 인기 있는 밴드에게만 돌아가기도 한다. 그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열정 어린 신인밴드들은 넘쳐났기에 그러한 관행들은 오래도록 유지되어왔다.

‘페이를 못 받아도 열심히 해서 성공한 뮤지션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저희는 그게 아니라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페이를 주고 받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크게 행사를 해도 (임금을 받지 않는) 자원활동이 전혀 없고,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도 꼭 임금을 주는 것이 저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정세현)

자립음악생산조합은 ‘클럽 대공분실’을 기반으로 하는 유기적인 음악공동체이다. 운영위원을 비롯한,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도 임금을 받고 그 공연에서 무대를 얻은 밴드들은 공연에 대한 임금을 받는다. 비록 그것이 생활비로 충분한 액수는 아니지만 수익이 생기는 대로 그것을 나눈다. 이들의 회계를 보면 가장 큰 지출이 인건비이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보다 싸고 편안하게 음악을 공급받는다. 조합을 통해 음악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교류할 수 있고 여름과 겨울 진행하는 강좌를 통해 음악생산과 관련된 정보도 공유한다. 이러한 운영 방식에서 생산자 복지와 소비자 복지를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조합의 적립금은 크게 모이기 힘들다. 그러나 생활협동조합은 사기업과는 운영의 목표가 다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차익을 많이 남겨놓는 게 중요하잖아요.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을 줄이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 하죠. 그러나 생협은 최대한 일한 사람에게 많이 주고 남은 돈으로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는 게 더 맞다고 봐요.‘ (단편선)

우리의 노는 꼴을 보여주자

2009년 12월 24일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이 건설사 측 용역에 의해 침탈되었다. 이튿날 새벽 2시, 이주비 명목으로 고작 300만원을 받고 거리로 쫓겨난 가게주인 안종녀씨가 삶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용역들이 쳐놓은 철제 펜스를 뜯고 들어가 철거반대농성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남편인 유채림 작가가 한겨레 오피니언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고 그 글을 본 몇몇 음악가들이 뜻을 같이 하고 2010년 2월부터 두리반에서 매주 토요일 ’토요자립음악회‘라는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리반 투쟁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특히 2010년 5월 1일 세계노동절 120주년 기념 전국 자립음악가 대회 공연을 기획하면서 두리반은 많은 수의 음악가들을 결집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농성 531일 만에 두리반 투쟁이 승리를 얻고 나서도 ‘단지 단발적인 좋은 일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였으니 뭘 해보자’, 특히 ’우리를 위한 일‘을 해보자는 음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자립음악가 모임‘이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모임의 형식에 관해 사람마다 다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안적인 레이블을 구상한 사람도 있었고 거의 모든 음악가들의 노동조합를 구상한 사람도 있었다고. 논쟁 끝에 결과적으로 생협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레이블을 차린 사람도 있는 등 각자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고 한다.

‘포크레인이 한번 때리면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이 낡은 건물이나, 내 처지나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두리반 투쟁에 참여했던 음악가들은 일종의 ‘계급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재개발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 작은 가게도 자립 음악가들도 ’쓸모‘의 논리에 소외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두리반에 대한 집단기억을 공유해서인지, 자립음악생산조합은 두물머리, 카페 마리 투쟁, 홍대 청소노동자 파업 등 많은 투쟁 현장에 계속적인 연대를 해왔으며 기존의 인디음악계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사회 참여적 성격은 세간의 많은 조명을 받아왔다.

조합은 음악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모인 공동체이지 정치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느슨하게나마 연대의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서로 도움’은 생활협동조합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이들의 총회에서는 ’연대 사업‘이 한 항목으로 논의된다. 공연에서는 두물머리에서 직접 직거래로 떼어온 특제 유기농 샐러드를 음악가와 관객들이 나누어 먹었고(두물머리에 승리를! 음악가에게 섬유질을!) 투병 중인 민중가수 이씬을 돕기 위해이라는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지난 10월에는 두물머리에서 팔당생명살림생협과 MOU를 체결했으며 최근 한예종 청소노동자 생활임금투쟁(생활임금 6100원 보장하라! 방관하는 학교가 직접 응답하라!)에 공식적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들 음악 향유자들 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는 항상 돌보고 보듬어야 합니다. 조합이 해야 할 일이 앞으로도 많습니다.’ (2012 하반기 정기총회 자료집 中, 작성자 황경하)

우리의 일들이야말로 중요하지

‘조합이 계속 잘되면 (음악가들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작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조합에 소속된 모든 뮤지션의 생계를 보장할 순 없어요. 거기까진 꿈같은 일이죠. (조합이 하는 일의 목적은) 하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안 돼서 음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을 막고 음악을 하는 것의 위험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입니다. 혁명은 저희 계획에 없습니다.‘ (정세현)

이들에게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묻자 그저 ‘할 일을 빵꾸내지 않고 열심히 하자‘라고 답한다. 또, ‘다 같이 연립해서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고 잘 살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이 힘드니까 그것을 위해서 다 같이 노력하는 상태’가 ‘자립’의 의미라고 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지극히 ‘생활’과 맞닿아 있기에 거창하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며 생활 그 자체로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제 3자의 입장에서 ‘혁명적인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낭만주의적인 접근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말의 크기가 아니라 깊이인데 그들이 말하는 ‘우리의 일’이 작지만 깊은 말이다. 그래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작은 움직임들은 ‘큰 뜻’을 품지 않아도 좋다. 허황된 큰 뜻이 없이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성취를 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진 않아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되 계속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더 잘 하게 되는 게 있고 더 알려진다면 알려지는 거고 더 잘 기능을 한다면 더 잘 기능을 하는 거고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고 계속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커지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정세현)

실제로 조합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CMS가 개설된 이후로 조합원은 1.8배나 늘어 총 120명 정도이다. 가입하는 것이 탈퇴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에(탈퇴를 하려면 조합에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운영위원들의 처리가 느긋하다) 이 법칙을 따르다 보면 십년 뒤엔 300명은 될 것 같다ㅡ고 농담처럼 말을 한다. ‘우리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 신기하게 근근이 잘해오고 있어.’라는 말에는 힘이 있다. 그 말의 힘을 믿고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상태‘로서의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내도록, ’계속해서 입에 풀칠하시라’는 응원을 보탠다.

당신도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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