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19] 일어나라 이씬 – 투병 중인 민중가수 이씬을 돕기위한 음악회

 

<<일어나라 이씬 – 투병 중인 민중가수 이씬을 돕기위한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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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오후 6시 반부터

두리반>>
아마츄어증폭기를 위한 아마츄어증폭기
연영석
백자
나는모호
회기동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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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5,000원
원 프리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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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씬 형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듣고선 옛날 생각이 났다.

이씬 형을 처음 보게 된 곳은 바다비였다. 같은 무대에서 공연이 있던 다른 음악가의 공연을 보러 와선 뒤풀이까지 합석했다. 아마 자신을 노동현장에서 노래하는 가수라 소개했던 것 같다. 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동대문 평화시장 앞 전태일 거리에서 매주 공연을 하고 있는데 한번 나와 보는 것이 어떻겠냐 물었다. 좋다고 말하곤 그 주에 바로 나갔다. 도착하니 이미 그는 기타 한 대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었다. 나도 주섬주섬 악기를 꺼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평화시장으로 나갔다. 언제부터인가는 한받도 연주하기 시작했다. 기타맨 형과 조충현이라는 친구도 연주했다. 우리는 ‘전태일문화행동’이란 이름으로 연주했다. 볼륨을 너무 키워서 가끔씩 경찰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시장 뒷골목에서 먹던 고등어구이의 맛도 일품이었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한받과 나는 두리반에서 자립음악회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많이 도와준 것이 또 이씬 형이다. 믹서를 하나 주기도 했고(이 믹서는 두리반 농성이 끝난 이후에도 조합에서 요긴하게 써먹었다.) 불렀을 땐 마다하지 않고 연주하러 달려와 주기도 했다(그때는 정말 관객이 하나도 없었는데). 첫 번째 <<51+>>가 있던 날엔 스피커를 몇 통이나 공짜로 빌려주기도 했다. 그날 우리가 너무 험하게 써서 돌려줄 땐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그는 내색 한번 하질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서로가 바빠 그간 우리는 오래 얼굴보질 못했다.

간만에 들려온 그의 소식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가 괴사성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수술비와 입원비로 큰돈이 쓰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매일 기륭이나 재능교육 등 노동현장에서 (당연히 돈을 받지 않고) 노래하고 생계는 간간이 들어오는 레슨으로 겨우 해결하고 있단 것을 알던 우리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이 가야하는 그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침 우리가 이 연주회를 위한 공간을 찾자마자 (새로 문을 연) 두리반에선 무료로 공간을 내어준다 했다. 음악가들도 흔쾌히 그를 돕는 연주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리는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당신은 이씬을 알 수도 있고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건 그가 유명한 가수는 아니니까. 하지만 여러 ‘현장’을 돌며 노동자와 약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무명의 그를 우리는 지지한다. 지금 몸져누워있는 그가 다시 기타를 잡고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음악가들이 건강 때문에 힘겨워하지 않는 날이 왔으면 한다.

우리는 좋은 연주를 준비하겠다. 돈을 모아주시면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다. 많이들 와주시길 바란다.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 단편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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